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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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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ESG와 제품안전

가천대학교 교수 서정대

최근 국내외적으로 ESG 경영이 확산함에 따라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애플, 테슬라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공급망 내 협력업체들에 대하여 노동권, 인권, 건강, 환경보호 등의 ESG 행동수칙을 마련하고 성과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애플의 협력사는 203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제품을 공급해야 한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도 협력사에 대한 공급망 ESG를 강화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대기업 협력사 ESG 관리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 30개사 중 87%가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ESG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조합한 단어로 기업의 친환경 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업의 투명한 지배구조를 의미한다. ESG는 기업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요소이며, 중장기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비재무적 성과지표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기업가치가 재무제표와 같은 정량적 지표에 의해 주로 평가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ESG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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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에서 환경은 기업의 경영활동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소로서 최근 기후변화와 관련된 탄소중립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환경오염 완화를 위한 자원 및 폐기물 관리, 더 적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하는 에너지 효율화 등도 관련된 중요한 이슈이다. 사회는 고객, 협력회사, 내부직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기업의 의무와 책임을 포괄하는 요소이다. 인권 보장, 근로자 안전, 공급망 및 지역사회와의 협력관계 구축 등이 최근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배구조는 경영진, 이사회, 주주, 이해관계자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영역으로서 투명하고 신뢰도 높은 이사회 및 감사위원회의 구성이 강조된다. 또한 뇌물이나 부패를 방지하고 정치적 로비 및 기부 활동에서 기업윤리를 준수함으로써 높은 지배구조 가치를 확보하고자 한다.

ESG는 1987년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지속가능 발전을 전 세계적 의제로 제시하면서 시작되어, 2006년 UN PRI에서 ESG를 투자결정과 자산운영에 고려한다는 원칙을 발표하면서 구체화되었다. ESG 경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9년에 있었던 BRT 선언이다. BRT는 애플, 아마존, 월마트, 블랙록과 같이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 CEO가 참여하는 연례 회의이다. 이 회의에서 기업의 전통적 목적인 주주 이익의 극대화 원칙을 폐지하고 모든 이해관계자의 가치가 통합된 새로운 기업의 목적을 선언하게 된다. 과거 주주를 최우선시 했던 기업들이 이제는 주주를 포함해서 고객, 직원, 협력사,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어서 2020년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지속가능성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강조되면서 ESG가 기업경영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다.

기업의 이해관계자인 투자자, 고객, 정부는 기업에게 ESG 경영체계를 갖추도록 요구하고 있다. 투자자의 요구로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스튜어드십 코드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가 의결권 행사 등으로 기업경영에 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국민연금의 금융지주 등의 소유분산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 지배구조에서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투자자뿐만 아니라 금융권에서도 최근 ESG를 기업대출의 평가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기업의 신규대출이나 대출갱신 시 금리조건을 산정할 때 다양한 ESG 평가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피치, S&P 뿐만 아니라 한국의 신용평가기관들도 ESG 평가결과를 기업의 신용평가 등급에 반영하고 있다. 금융권의 대출규제와 신용평가는 기업의 자본조달과 직결되기 때문에 ESG 경영이 기업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업의 ESG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요구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각국 정부에서도 이에 발맞추어 관련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후변화 이슈로서 탄소중립과 관련되어 있다. EU, 미국 등을 중심으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관련정책과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하여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부터 물품을 수입할 시 탄소배출량에 상응하는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2023년 10월부터 시험운영에 들어가고 2026년부터 부과할 계획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함께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도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으며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수출 대기업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가치사슬에 편입된 국내 중소기업들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정부규제로 경영 투명성에 관한 ESG 정보공시 의무화를 들 수 있다. EU는 2022년 11월 유럽 진출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 지속가능성 공시 지침’을 승인하면서 2023년부터 이를 시행하기로 했다. ISSB(국제지속가능성표준위원회)도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ESG 공시기준을 2023년 상반기에 공표할 예정이다. 한국도 2021년 1월 금융위원회가 ESG 공시의 단계적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현행의 자율적 공시형태에서 2025년부터는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2030년 이후에는 전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의무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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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의 요구도 확산하고 있다. 이를 가속화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EU의 공급망 ESG 리스크관리 의무화를 들 수 있다. EU는 2022년 2월 역내외 모든 사업장과 중소·중견기업 협력사를 대상으로 ESG 관리 이행여부를 정기적으로 실사 후 관련 내용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공급망 실사 지침’을 발표했다. ESG 경영이 미흡한 공급사와는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공급망에서 주요 ESG 이슈가 발생했을 경우 벌과금부터 공공조달 입찰배제, 정책적 지원박탈과 수입제재에 이르는 패널티를 받을 수 있다.

이제 기업은 자사 제품을 생산하는 데 있어 발생하는 리스크뿐만 아니라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로 범위를 확대하여 관리해야 한다. 공급망에서 발생 가능한 ESG 리스크로는 아동노동, 강제노동 등과 같은 근로자 인권 및 근로환경 개선과 함께 생산공정 내 유해물질 배출과 같은 가치사슬 내에 존재하는 안전규제 위반 등이 있다. 2019년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핵심원료인 코발트 생산과정에서 콩고에서의 아동노동이 문제가 되어 공급망 구조에 제동이 걸린 사건은 대표적인 공급망 ESG 리스크 사례이다. 최근에는 협력업체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여 공급할 것을 요구하거나,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리스크를 추적하고 이를 협력사가 스스로 관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21년 발생한 SK E&S의 그린워싱 논란도 이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로 볼 수 있다.

공급망 협력사들, 특히 국내 중소·중견기업은 정부규제와 고객사 및 소비자의 관련 요구사항에 맞추어 공급망 ESG 리스크에 대응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공급망 ESG 리스크관리를 위하여 글로벌 표준 또는 이니셔티브의 지표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참고할 수 있는 주요 글로벌 가이드라인으로는 GRI, SASB, WEF, TCFD, ISO26000 등이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형태의 지표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최근 글로벌 표준 통합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서도 2021년 1월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를 발표하면서 핵심적이고 공통적인 내용들을 권고 공개지표(12개 항목 21개 지표) 형태로 제시하였다. 이 지표들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ESG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글로벌 표준을 참고하여 조직, 환경, 사회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사회 영역의 안전·보건 항목에서 제품안전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품안전 지표의 세부내용으로 제품 리콜(수거, 파기, 회수, 시정조치 등 건수 및 조치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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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도 2022년 12월 공급망 실사 확대에 따른 국내 중소·중견기업 지원을 위해 ‘공급망 대응 K-ESG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중소·중견기업이 공급망 실사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산업별 이니셔티브의 지표를 검토하여 진단항목 체계를 설계하였다. 중소·중견기업이 필수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진단항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개별 진단항목과 관련된 국내 관련 법/제도 정보를 공유하였다.

K-ESG 가이드라인은 중소·중견기업의 ESG 경영 도입현황을 고려하여 진단항목 체계를 기초 진단항목과 심화 진단항목으로 이원화하여 구성하였다. 안전과 관련된 진단항목으로는 기초 진단항목에서 제품 내 유해물질 관리, 안전보건 인허가 획득, 작업환경 측정, 비상상황 대응체계 등 유해물질, 안전보건체계, 작업환경개선, 산업재해 예방의 4가지 범주에서 9가지 진단항목을 제시하고 있으며, 심화 진단항목에서는 기초 진단항목에 더하여 안전보건 추진체계, 위험성 평가, 비상출구 시설관리 등 6가지를 추가하여 4가지 범주에서 15개 진단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K-ESG 가이드라인의 안전관련 진단항목은 대부분 작업자안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공급망에서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소비자에 대한 안전 고려가 부족한 상황이다. 작업자안전을 위하여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근거하여 진단항목을 개발하였으나 제품안전과 관련해서는 화학물질관리법에 근거한 제품 내 유해물질 관리 진단항목이 유일하다. 소비자안전은 제품안전을 통하여 확보되는 관점에서 볼 때 제품안전과 관련된 추가적인 지표설정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제품안전을 위하여 제품안전기본법,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어린이제품 안전특별법 등 관련법을 시행하면서 제품안전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관련법에 근거하여 K-ESG 가이드라인에 제품안전 관련 진단항목을 추가, 설정할 필요가 있다. 제품의 리스크 수준, 불법·불량제품 발생, 제품사고 발생, 리콜 명령 및 권고 횟수, 리콜 회수율 등은 제품안전과 관련하여 설정 가능한 기본적으로 중요한 지표들이다. 나아가 제품 제조 프로세스가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체계화되고 공식화되어 있는지, 고객 불만 사항 및 피드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지 여부 등도 중요한 관리지표가 될 것이다. 향후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집단소송제도 등과 관련된 이슈들이 일반화되고 확대될 수 있으므로 지금부터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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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는 이제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EU의 탄소국경세 도입, 공급망 실사, ESG 정보공시 의무화 등은 기업이 당면한 새로운 환경이다. 기관투자자는 스튜어드십 코드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는 업사이클링 프라이탁 가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고자 하는 의식있는 소비자로 변화하고 있다.

공급망 실사는 글로벌 수출 대기업뿐만 아니라 공급망을 구성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도 적용된다. 대기업은 전 공급망에 걸친 ESG 관리를 위하여 협력사인 중소·중견기업에게도 동참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대기업은 중소·중견기업의 ESG 요소를 평가할 것이고, 이를 고려하여 협력사를 선정하게 될 것이다. 공급망 ESG 리스크 요소로 인권, 환경 등과 함께 주요한 지표로 제품안전이 있다. 제품안전은 국가 간 무역을 통하여 이동되는 제품에 대한 리스크로서 이제 자국 내에서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요구사항으로 확대될 것이다.

제품안전을 포함한 ESG 경영은 리스크관리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ESG 경영전략을 선제적으로 수립하고 내재화하는 기업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생존과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